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보이아 가문 (문단 편집) === 수모 === 통일 이전부터 프랑스한테 두들겨맞아 16세기 [[이탈리아 전쟁]],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본토 대부분이 점령당하는 수모를 당했는데 통일 이후에도 이러한 수모는 달라지지 않았다. 통일 이후의 이탈리아 왕국은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서 내부에서 혼란이 많았고, 내부 잠재력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해 유럽의 열강 국가 사이에서도 존재감도 별로 없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별다른 활약을 못보였고 그덕에 이익도 많이 보지도 못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추축국이 되었으나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으로 유명하듯 [[이탈리아 왕국군]]은 한심한 행보를 보였다. 결국 이탈리아는 나치 독일, 일본 제국과 함께 패전국 신세가 되었으며, 국민투표로 왕정이 폐지되면서 사보이아 가문은 50년 이상 이탈리아에 입국조차 하지 못했다. 한편 왕실 구성원을 봐도 무언가 문제가 있는데 3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키가 153cm밖에 안되는 희대의 단신으로 주변에서 놀림을 많이 받았으며[* 다만 현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단신은 윗대부터 지속된 근친혼에 의한 부작용이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유전질환으로 인해 심한 통증을 앓았고 그래서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할아버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고종사촌 겸 당이모인 [[오스트리아의 아델하이트]]와 결혼했고, 아버지 [[움베르토 1세]]와 어머니 사보이아의 마르게리타도 친사촌 관계였기 때문. 숙부인 오도네 왕자(할아버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3남)도 근친혼에 의한 유전질환으로 인해 왜소증을 앓다 20세에 사망했다.] 왕정 폐지 이후 사보이아 가문 직계는 남계후손이 없어서 단절되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사보이,version=38)] [[분류:사보이아 가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